영화 ‘한국이 싫어서(2019)’는 단순한 청춘 로드무비를 넘어, 이 시대 청년들이 처한 사회적 불안과 탈출 심리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작품입니다. 동명의 베스트셀러 소설을 원작으로 한 이 영화는 주인공 나래가 한국 사회에 지쳐 프랑스로 떠나는 과정을 따라가며, 현실 이민자의 시선에서 청년세대의 고립감, 무력감, 탈출 욕망을 섬세하게 조명합니다. 특히 MZ세대에게 '이민'은 단순한 환상이 아니라, 무언가를 견딜 수 없게 된 끝에 택하는 ‘생존 방식’으로 자리잡고 있습니다. 본문에서는 이 영화가 어떻게 MZ세대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며, 워킹홀리데이나 이민을 둘러싼 환상과 실제가 어떻게 다르게 작동하는지를 집중 분석합니다.
“그냥 한국이 싫었어요”라는 말에 담긴 무게
영화에서 가장 인상 깊은 대사 중 하나는 나래가 프랑스로 떠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 답하는 장면입니다. “그냥 한국이 싫어서요.” 단순하고 직설적인 말이지만, 그 안에는 한국 사회의 병폐에 대한 복합적인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나래는 학벌도 있고, 직장도 나쁘지 않지만, 일상은 공허하고 인간관계는 피로하며, 미래는 막막합니다. 이처럼 특별히 큰 문제가 없어 보여도 ‘살고 싶지 않은’ 감정을 품은 채 살아가는 청년들은 적지 않습니다.
MZ세대는 이전 세대와 달리 ‘열심히 하면 된다’는 말에 더 이상 설득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뼈 빠지게 일하고도 얻는 것이 없다는 허무함, 끝이 보이지 않는 경쟁 속에서 느끼는 고립감,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기준에 맞춰 살아야 한다는 피로감이 쌓이고 있습니다. 나래는 이러한 구조적인 문제를 비판하거나 분석하지 않습니다. 대신 조용히 짐을 싸고 떠납니다. 그 모습은 수많은 MZ세대에게 강한 울림을 줍니다.
‘그냥 한국이 싫다’는 말은 단순한 도피가 아니라,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내면의 외침일 수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청년들에게 기대하는 것과, 청년들이 실제로 원하는 삶 사이의 간극은 점점 더 벌어지고 있습니다. 이 간극 속에서 일부는 해외로, 혹은 다른 방식의 삶으로 방향을 틀고 있는 것이죠.
워킹홀리데이의 현실은 낭만이 아니다
영화 속 나래는 프랑스로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받고 떠나지만, 도착 이후 그녀를 맞이한 것은 자유와 해방이 아닌, 새로운 종류의 생존 투쟁입니다. 언어 장벽, 불안정한 숙소, 낮은 임금의 단기 노동, 건강 문제 등은 낯선 타국에서 그녀를 끊임없이 시험에 들게 합니다. 나래는 파리에 도착했을 때 기대했던 ‘다른 삶’을 온전히 누리지 못하고, 오히려 현실적인 문제 앞에서 또다시 고민하게 됩니다.
많은 MZ세대가 워킹홀리데이 혹은 이민을 통해 더 나은 삶을 기대하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사회에서 적응해야 할 또 다른 규범, 제도, 경제적 제약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특히 언어 장벽은 생각보다 더 큰 문제로 다가오며, 단순한 소통 문제를 넘어 고립과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영화는 이러한 불편한 진실을 솔직하게 보여줍니다. 아름다운 유럽의 거리, 낭만적인 파리의 풍경은 잠깐의 위안이 될 뿐, 일상은 여전히 고단합니다.
이 부분에서 영화는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한국을 떠나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까?” 나래의 경험은 그렇지 않음을 보여줍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그녀가 그 과정을 통해 ‘자기 자신’과 마주하고, 본질적인 삶의 기준을 재정립했다는 점입니다. 영화는 이민을 도피로만 보지 않고, 자기 탐색의 과정으로 해석하며 청년 세대의 선택에 의미를 부여합니다.
MZ세대의 이민 욕망, 그 심리의 이면
MZ세대는 이전 세대와 다르게 ‘이민’을 하나의 현실적인 옵션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는 국경을 넘는 것이 더 이상 거창한 결정이 아닙니다. 인터넷과 SNS를 통해 전 세계의 삶을 쉽게 접할 수 있고, 해외 취업이나 원격근무 같은 새로운 형태의 노동 방식도 확산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선택이 근본적으로 ‘현실에 대한 불만’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한국이 싫어서’라는 말에는 단지 정치나 경제 시스템에 대한 불만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더 깊은 차원에서, MZ세대는 ‘나답게 살 수 있는 공간’을 찾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공간은 어떤 국가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안전하고 존중받을 수 있는 환경을 뜻합니다. 한국 사회가 여전히 서열 중심, 성과 중심, 집단주의에 머물러 있는 이상, 많은 청년들은 이 시스템에서 벗어나고자 합니다.
하지만 영화는 동시에 말합니다. “어디든 살아가는 건 쉽지 않다.” 이민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며, 삶의 형태가 달라질 뿐 본질적인 고민은 계속된다는 것을. 나래가 프랑스에서 겪는 고립과 혼란은, 한국에서 느꼈던 그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끝까지 자신만의 선택을 지키며, 그 길 위에서 삶의 조각들을 하나씩 맞춰 나갑니다.
‘한국이 싫어서’는 단지 한 사람의 이민 이야기가 아닙니다. 그것은 한국 사회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MZ세대의 내면을 대변하는 작품입니다. 영화는 이민을 통해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현실의 벽을 숨기지 않으며 균형 잡힌 시선을 유지합니다. 이 작품은 탈한국을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진정한 자문을 던집니다. “당신은 지금, 어떤 이유로 어디에 있고 싶은가요?”
이 영화는 단순히 '한국이 싫다'는 감정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감정을 가진 이들에게 공감하고, 그런 선택의 배경을 이해하며, 그 너머의 질문을 꺼내 보입니다. 만약 지금 당신도 삶의 방향을 고민하고 있다면, 이 영화는 그 물음에 함께 귀 기울여 줄 수 있는 친구가 될 것입니다.